해외여행을 하면서 유명 관광지나 현지 맛집만 찾는다면, 어쩌면 진짜 그 나라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매일 가는 슈퍼마켓 그곳은 단순히 생필품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그 사회의 일상, 식문화, 경제 구조, 심지어 가치관까지도 보여주는 작은 문화 박물관입니다. 관광지에서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진짜 삶을 엿볼 수 있는 장소죠. 오늘은 여행 중 마트를 탐방하면서 발견한 문화의 차이와 재미있는 경험들을 나눠보려 합니다.
1. 유럽의 마트_ 느림 속에 담긴 고집과 가치
유럽의 마트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제품 하나하나에 담긴 장인의 정성과 고유한 취향입니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처럼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마트조차도 미식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슈퍼마켓인 Monoprix에 가면, 빵 코너 한쪽에 갓 구운 바게트가 바구니에 담겨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있고, 각 지역의 치즈가 지방명 으로 표기되어 진열되어 있습니다. 파리의 한 마트에서 인상 깊었던 순간은, 할머니 한 분이 유제품 코너 앞에서 한참 동안 특정 브랜드의 요거트를 고르고 있던 장면이었습니다. 바쁜 도시라면 빠르게 쇼핑을 마치고 나갔을 테지만, 프랑스의 마트에서는 천천히 고르고, 냄새를 맡고, 맛을 상상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풍경이었습니다.
또한 유럽 마트의 포장재를 보면 환경에 대한 고민도 엿보입니다. 비닐봉투가 없고, 대체로 종이봉투나 천가방을 들고 다니는 현지인들을 보면, 단순히 소비가 아닌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가 느껴집니다. 마트 한켠에 있는 지역 농산물 코너나 유기농 제품 전용 진열대는 그들이 건강과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유럽의 마트는 식료품을 파는 공간을 넘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을 반영하는 공간입니다. 천천히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그 도시의 정신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 됩니다.
2. 아시아의 마트 _다양성 속의 일상, 그리고 실용미
아시아의 마트는 유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더 역동적이고, 상품도 다채롭고, 가격 경쟁력도 높습니다. 특히 한국, 일본, 태국, 대만 같은 나라의 슈퍼마켓은 지역 특유의 식재료와 간편식, 독특한 간식들이 가득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품군이 워낙 다양해 여기서 하루 종일 구경할 수 있다는 말도 농담이 아니죠.
일본 마트에서는 각 도시마다 다른 로컬 브랜드의 라멘이나 간편식 도시락이 진열돼 있고, 일본 특유의 디테일이 돋보입니다. 계란 하나도 생으로 먹는 것을 전제로 판매되기 때문에, 위생 관리 기준이 엄청나게 엄격하죠. 또 간장, 된장, 유자 식초 등 일본 고유의 양념이 정교하게 분류되어 있는 진열대를 보면, 그들의 요리 문화가 얼마나 세분화되어 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한국의 경우는 1인 가구를 위한 소포장 제품, 냉동식품, 밀키트 코너가 눈에 띕니다. 바쁜 도시인의 삶에 최적화된 구성으로, 조리 시간을 줄이고도 퀄리티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성이 특징입니다. 또한 시식 코너 문화는 외국인에게는 놀라운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제품을 맛보고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직접 체험에 가치를 두는 한국 소비자의 성향을 보여줍니다.
아시아의 마트에서는 실용성과 속도, 다양한 선택지, 그리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현대적 사고방식과 지역의 소비 습관을 여행자로서 관찰할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3. 남미와 중동의 마트_생동감 있는 시장의 감성, 사람과 삶의 연결
남미나 중동 지역의 마트는 전통 시장과 슈퍼마켓이 혼합된 듯한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정리정돈은 다소 덜할 수 있지만, 그 대신 사람의 온기와 활기가 가득한 공간이죠. 브라질 상파울루의 마트에서는 신선한 열대과일이 한가득 쌓여 있고, 과일을 잘라 직접 먹어보게 해주며 가격도 흥정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방문한 한 슈퍼마켓은 겉보기엔 평범한 마트였지만, 내부에는 직접 구운 바클라바, 오일에 절인 올리브, 향신료 가루를 무게로 파는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었어요. 이런 곳에서는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특유의 식문화와 조리 방식, 향신료 활용법까지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그야말로 시장과 마트의 중간 형태라고 볼 수 있죠.
또한 이 지역의 마트에서는 가족 단위의 쇼핑 문화가 돋보입니다. 부모와 아이, 심지어 할머니까지 함께 와서 식재료를 고르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 소소하고 따뜻한 풍경입니다. 대도시의 빠른 소비 중심 쇼핑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쇼핑 그 자체가 가족 간의 일상적인 유대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남미와 중동의 마트에서는 구매 이상의 교감과 체험, 그리고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속엔 여행자가 좀처럼 경험하지 못하는 생활의 리듬이 흐르고 있죠. 때론 유명한 관광지보다 마트에서 더 진짜 그 나라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행을 가면 관광지도, 맛집도 좋지만 한 번쯤은 현지 슈퍼마켓을 꼭 들러보세요.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정보와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 체험 공간이니까요. 상품 하나를 고르며 그 사회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고, 소소한 기념품도 찾을 수 있습니다. 마트는 늘 열려 있고, 언제든지 삶의 온도를 보여주는 창입니다.